자폐

활자 2013. 1. 21. 08:06

우리는 나의 세계에 갇혔다. 나의 세계에서 우리는 위대했고 사랑했다. 나의 세계는 오직 나의 자아다. 나는 너라는 자아. 아직은 타자인 어쩌면 영원히 타자일 너와 소통했어야 했다. 인간에게는 언어라는 최소한의 소통 도구가 있었고, 우리는 때때로 몸을 부딪힐 수도 있는 관계였다. 몸을 부비며, 함께 춤을 추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며, 눈을 마주하며 네게 나를 소개하며, 동시에 너를 알아갔어야 했다. 소통했어야 했다. 때로는 네 세계에 놀러가고 때로는 나의 세계에 초대하면서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간극을 좁혀나갔어야 했다. 


나는 지력으로 언변으로 너에게 나의 세계를 강요했다. 달콤한 말로 나의 세계에 초대한 후 나가지 못 하게 가두어 두었다. 여린 너는 한동안은 벗어나려다 끝내는 순응하려 했다. 나는 마구잡이로 너를 잠식해 갔다. 너는 내가 말한대로 존재했다. 너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대로 너는 존재했다. 사랑은 두 자아를 전제로 한다. 끝내 네 자아가 없어질 때 쯤 사랑도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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